요즘 남자 셔츠의 깃이 조금 이상합니다. 재킷 안에 얌전히 들어가 있던 깃이 밖으로 삐져나옵니다. 한쪽은 들어가 있는데 다른 한쪽만 나와 있기도 하고, 니트 위로 긴 깃 끝이 축 늘어지기도 합니다. 예전 같으면 거울을 보고 다시 집어넣었을 모습입니다.
그런데 2026년 런웨이에서는 반대였습니다. Auralee에서는 셔츠 깃이 재킷과 니트 밖으로 흘러나온 룩이 반복됐습니다. Jil Sander와 Celine, Aimé Leon Dore, Saint Laurent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이어졌고 Bottega Veneta와 Balenciaga에서는 한쪽 칼라만 꺼내놓은 비대칭 스타일링까지 등장했습니다.
셔츠를 새로 살 필요도 없습니다. 깃 하나를 밖으로 꺼냈을 뿐인데 반듯했던 옷이 조금 느슨해지고, 평범했던 셔츠에 표정이 생깁니다. 그런데 요즘 셔츠를 조금 더 자세히 보면 또 하나가 보입니다. 밖으로 나온 것만 달라진 게 아닙니다. 깃 자체도 다시 길어지고 있습니다.
2010년대 남성복을 떠올려보세요
몸에 붙는 셔츠에 좁은 재킷 라펠, 가는 타이, 슬림한 팬츠. 한동안 남자 옷은 전부 날렵한 방향으로 움직였습니다. 셔츠 깃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짧고 작았습니다. 몸에 붙는 재킷 사이에서 작고 단정한 칼라는 꽤 잘 어울렸습니다. 옷 전체의 비례가 그렇게 만들어졌으니까요.
지금은 풍경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최근 몇 년간 이어진 오버사이즈 패션의 흐름 속에서 팬츠의 폭이 넓어졌고 재킷에도 다시 여유가 생겼습니다. 셔츠 역시 몸에서 조금씩 떨어지고 있습니다. 최근 J.Crew가 포인트 칼라를 거의 20년 만에 다시 길게 뽑아낸 것도 이런 변화와 맞닿아 있습니다. 넓어진 재킷과 셔츠 사이에서 짧은 칼라는 예전만큼 힘을 쓰지 못합니다.
셔츠 깃만 책상 위에 올려놓고 보면 몇 센티미터 차이입니다. 그 깃을 얼굴과 재킷 사이에 놓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넓은 라펠 아래에서는 짧은 깃이 숨어버리고, 길게 내려오는 포인트 칼라는 얼굴 아래로 새로운 선을 만듭니다. 남자 옷이 커지자 깃의 기세도 다시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1970년대 사진을 한번 보세요. 깃부터 다릅니다
사실 큰 셔츠 깃은 새로운 유행도 아닙니다. 1960년대 후반과 1970년대 남성복 사진을 보면 지금보다 훨씬 과감합니다. 재킷 라펠은 넓고 팬츠도 넓습니다. 그 사이로 셔츠 깃이 길게 내려옵니다. 어떤 셔츠는 깃만 보고도 어느 시대의 옷인지 짐작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당시 영국 남성복에서는 기존의 보수적인 슈트가 무너지면서 컬러와 프린트, 넓어진 라펠과 팬츠처럼 훨씬 과감한 비례가 등장했습니다. 1970년대로 가까워질수록 그 폭은 더욱 커졌습니다. 최근 다시 등장한 긴 포인트 칼라도 이 시절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미 몇 년 전부터 남성복에서는 길고 뾰족한 ‘큰 칼라’가 다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다만 입는 모습은 조금 달라졌습니다. 예전에는 큰 깃을 제대로 펼쳐 보여줬다면 요즘은 일부러 한쪽을 접고, 빼고, 흐트러뜨립니다. 셔츠와 재킷은 꽤 잘 갖춰 입었습니다. 마지막 깃 하나만 살짝 틀어놓습니다. 너무 반듯하게 끝내지 않는 겁니다.
그래서 지금의 칼라 아웃 스타일링은 복고풍 셔츠를 그대로 가져온 모습보다는 단정한 남성복에 작은 어긋남을 만드는 방식에 더 가깝습니다. Vogue가 FW26의 half-tucked collar에서 주목한 부분 역시 이 비대칭입니다.
그렇다면 왜 하필 지금 셔츠 깃일까요?
바지는 이미 넓어졌습니다. 재킷도 커졌습니다. 요즘 남성복에서 편안하고 여유 있는 실루엣은 더 이상 낯선 모습이 아닙니다. 그 변화가 이제 셔츠의 작은 부분까지 내려온 겁니다.
짧은 깃은 슬림한 옷 안에서 잘 어울렸습니다. 반대로 볼륨이 커진 옷에서는 조금 더 긴 포인트가 셔츠와 재킷 사이를 채웁니다. 그리고 밖으로 한번 꺼내놓으면 그 차이가 더 잘 보입니다.
짧은 칼라는 니트 위에서 금방 끝납니다. 긴 포인트 칼라는 니트와 재킷 위로 선명하게 떨어집니다. 같은 흰 셔츠라도 깃 몇 센티미터가 옷의 분위기를 바꾸는 이유입니다.
빅사이즈 셔츠를 입는다면 이 부분은 더 눈여겨볼 만합니다
4XL 셔츠를 한번 정면에서 떠올려보세요. 어깨가 넓어지고 가슴과 몸통의 면적도 커집니다. 그런데 얼굴 아래에 있는 셔츠 깃까지 같은 비율로 존재감을 갖고 있을까요?
의외로 그렇지 않은 셔츠도 있습니다. 몸판은 넓고 넉넉한데 깃은 짧고 작습니다. 옷은 충분히 큰데 목 주변만 갑자기 작아 보입니다. 같은 3XL나 4XL 표기라도 브랜드에 따라 몸판과 목둘레, 전체 패턴은 달라집니다.
옷깃도 전체 실루엣의 일부입니다. 실제 맞춤 셔츠에서도 체격이 큰 경우 조금 더 긴 칼라 포인트가 전체 비례와 잘 어울릴 수 있다는 기준을 사용합니다. 같은 이유로 일반적인 칼라가 작게 보이는 체격을 위해 더 긴 포인트를 가진 별도 칼라를 만들기도 합니다.
몸판 사이즈만 맞는 셔츠와 몸 전체에서 비례가 맞는 셔츠는 분명히 다릅니다. 사이즈와 핏이 어떻게 다른지는 레귤러핏과 릴랙스드핏 차이에서도 이어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큰 셔츠에 아주 작은 깃이 붙어 있으면 상체의 넓은 면적 사이에서 칼라가 힘을 잃습니다. 반대로 어느 정도 길이를 가진 깃은 얼굴과 어깨 사이에서 셔츠의 중심을 만들어줍니다. 몸판은 맞는데 뭔가 셔츠가 어색했다면, 이번에는 깃도 한번 보세요.

그렇다고 무조건 큰 깃을 고르는 것도 재미없습니다
셔츠 깃에는 길이만 있는 게 아닙니다. 아래로 얼마나 길게 내려오는지, 양쪽 끝이 얼마나 벌어지는지, 목을 감싸는 부분이 얼마나 높게 올라오는지가 함께 모양을 만듭니다.
얼굴 폭이 넓다면 벌어짐이 작은 포인트 칼라가 시선을 아래로 끌어내릴 수 있고, 얼굴이 길다면 조금 더 넓게 벌어지는 스프레드 칼라가 다른 균형을 만듭니다. 목이 짧다면 높은 칼라보다 낮은 칼라 밴드가 자연스럽게 보일 수 있습니다.
빅사이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장 큰 깃을 찾는 게 아니라 내 셔츠와 내 얼굴, 내 목 사이에서 작아 보이지 않는 깃을 찾는 쪽이 더 재미있습니다. 목둘레 역시 사이즈가 올라가면서 함께 달라집니다.
Big & Tall 사이즈표를 보면 상의 사이즈가 커질수록 가슴뿐 아니라 목둘레 기준도 함께 커집니다. 드레스 셔츠에서 목둘레와 소매 길이를 따로 맞추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이번 가을에는 셔츠 깃을 한번 꺼내보세요
니트 안에 있던 깃 한쪽을 밖으로 빼거나 재킷 라펠 위에 살짝 걸쳐보세요. 좌우를 완벽하게 맞추기보다 조금 어긋난 모습이 지금의 분위기와 더 잘 맞습니다. 작은 변화지만 셔츠의 인상은 꽤 달라집니다.
이번 셔츠 깃 유행이 재미있는 이유는 단순히 새로운 스타일링 방법이 하나 생겼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팬츠가 넓어지고 재킷과 셔츠의 실루엣이 커지면서, 그동안 크게 신경 쓰지 않았던 깃의 길이와 비례까지 다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빅사이즈 셔츠라면 더 그렇습니다. 이제는 가슴과 총장이 맞는지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얼굴과 목, 넓은 어깨 사이에서 깃이 어떤 비례를 만드는지도 한번 볼 만합니다. 큰 옷을 잘 입는 기준이 단순히 ‘충분히 큰가’에서 ‘내 몸에서 어떤 실루엣을 만드는가’로 조금씩 달라지고 있습니다. 셔츠 깃은 그 변화를 보여주는 작은 디테일입니다.